지나가는거

그만쉬어 이 청년아

Minseok Kwak 2026. 7. 16. 22:14

그만 쉬게 되었다. 

 

2월인가 3월부터 자타공인 쉬었음 청년이었다. 같이 창업하던 친구는 제안이 온 곳이 이전에 우리가 창업했던 내용과 꽤나 결이 비슷해서 떠나가고, 나는 창업판이 더 이상은 할만한 게 아닌 것 같아 제안을 받지 않았다. 

 

왜 더 이상 할만한 게 아닌 거 같냐?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나름 꽤 열심히 함.

 

그중 큰 하나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의사 결정이 자주 바뀌게 된다. 대기업이 범선이라면 스타트업은 모터보트이다. 크기로든 조타의 용의성이든 어느 방면으로 봐도 가장 어울리는 비유이다.

 

이런 모터보트 같은 자유로운 방향 전환성이 나에겐 큰 스트레스였다. 난 계획이 틀어지면 스트레스를 받고, 그에 대한 내성이 조금은 적은 편이다. 살다 보니 조금은 무뎌진 느낌이긴 하지만 조금은 남아있다. 그 조금이 꽤 나에겐 스트레스였다. 스타트업이라는게 아무래도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돈이 되는 쪽을 쫓는(물론 신념을 가지고 하는 스타트업도 있긴 하다. 돈이 될지 안될지는 다른 얘기지만.) 단체이다 보니 A를 선택했다가 B를 선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제는 맞지만 오늘은 틀린 걸 볼 수 있는 게 스타트업이다. 

 

이러한 의사결정 변경의 크기는 각기 다른데, 오래전에 결정한 사항일수록, 진행된 사항이 많을수록 난 큰 방향전환이라 생각하며, 크기가 커질수록 스트레스의 크기가 비례하게 커진다. 

물론 이러한 일이 발생 안 할 수는 없다. 필연적이다. 근데 막상 생기면 자전거 타고 잘 앞으로 가다가 누군가가 옆에서 바퀴를 발로 쌔게 찬 뒤 다시 시작점으로 넘어가는 거 같은 느낌을 받아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그냥 내 징징됨일 수 있을 거 같은데, 투자받을 때는 얼마만큼 매출과 기술적 구현이 이루어졌는지 보단 구성원이 누군지 더 따지는 느낌이었다. 투자자 입장에선 배가 얼마나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배로 실제 항해를 해봤고 물고기를 잡았는지보단, "범선에 타봤던 아무개가 배를 만들어볼 예정"이란 타이틀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보였었던 거 같다.

 

맞다, 난 남탓 하고 있는 거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팀이 뭐가 못났었는지 잘 모르겠다. 발전적인 사고는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지만 생각해 봐도 난 잘 모르겠다. 

근데 한편으론 내가 투자사여도 그럴 것 같긴 하다. 뭘 믿고 우리에게 돈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사회적 보증이 없다. 스타트업의 구성원이 범선에 선원이었던 아무개일 때는 "그래, 아무래도 OO범선 출신이니 어느 정도 알아서 하겠지. "가 작동하겠지만 그런 보증이 없는 사람이라면 검증의 칼을 들이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대전 출장 때 산 성심당 시루.

 

그밖에 어떤 방향이 맞는지 판단할 수 없는 경험 부족과 수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1월 언저리에 창업을 그만두고 한 1달 정도 다른 팀에서 알바 형태로 일을 했었다. 덕분에 건설 도메인을 접해보면서 신나게 도면을 뜯어볼 수 있었다. 여담인데 건축과를 가도 꽤 재밌었을 거 같았다. 코딩이 자동화에 대한 논리적 작성이라면, 건축은 삶에 대한 논리적 작성으로 느껴졌었다. 구조화된 생각을 실물로 만들 수 있다는것에 큰 매력 또한 직접 느껴보았다. 

여하튼, 그곳을 다닐 때도 다른 곳에 취업을 목표로 하며 다니다가 도저히 병행이 불가능해 보여 그만두게 되었다. 가끔 지방으로 출장도 가야 하고, 납기를 위해 야근을 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 저번주 금요일, 모회사에 인턴으로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웃긴 건 저번달에 실업급여 마지막 회차 후 이번 달에 출근 연락이 오게 된 것이다. 주변에서 누가 보고 있는 건지 참 간당간당하게 사람을 살려준다. 

 

직무는 AI Agent에 대한 FDE이다. 난 그냥 고객사 상주하는 직무로, 특정 단어(FDE)가 없는 줄 알았더니 지인이 이 단어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나 나름 만족하는 게, AI Agent 설계와 그에 수반되는 기술(RAG, Embedding 등등) 필드에 계속 있었고 해당 분야로 계속 갈 생각이 있었기에 해당 직무로만 넣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고객사 파견을 간다는 게 약간은 걸리지만 실무 데이터를 다룰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리하여, 7월 27일부로 4개월간의 쉬었음 청년은 다시 일함 청년으로 분류되러 간다. 

또 뭔가 할 얘기가 있으면 돌아오겠다.